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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축구소식/축구계 이모저모

K-리그 레전드 선수 모음집(국내선수)

by 흙흙이 2021. 1. 16.

l  K리그 ㅣ

 

-개요 : 한국 프로축구연맹(KFA)이 주관하는 대한민국의 프로 축구리그 현재는 K리그 클래식(1부) K리그 챌린지(2부)로 운영하고 있다. 매년 1부 리그 2개 팀이 강등되며 최 하위팀은 자동 강등, 1개 팀은 2부 리그의 플레이오프 승자와 승강제를 치른다.

 

-설립 : 1983년 '슈퍼리그'로 출범

 

-참가팀 : 2020 시즌 기준

1부 리그 - 전북 현대, 울산 현대, 강원 FC , 광주 FC, 대구 FC, 상주 상무, FC 서울, 성남 FC, 수원 삼성, 인천 유나이티드, 부산 아이파크, 포항 스틸러스

2부 리그 - 경남 FC, 대전 하나 시티즌, 제주 유나이티드, 부천 FC, 서울 이랜드, 수원 FC, 충남 아산 FC, 안산 그리너스 FC, FC안양, 전남 드래곤즈

(2021 시즌은 상주 상무의 자동 강등 결정과 함께 부산 아이파크가 강등되어 2부 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하며 2부 리그에서는 제주 유나이티드와 수원 FC가 승격을 확정 지었다)

 

- 최다 우승팀 :

전북 현대 8회 우승(2009, 2011, 2014, 2015, 2017, 2016, 2019, 2020)

 

- 최다 출장 선수 :

김병지 706경기

 

- 최다 득점 선수 :

이동국 548경기 228 득점

 

 

 

 

 

  • 이동국

K-리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라이언 킹' 이동국은 모두가 인정하는 K리그의 레전드이다.(현재는 대박이 아빠) 

1979년 포항에서 출생하여 포항제철고, 위덕대학교 졸업 이후 1998년 포항 스틸러스에서 처음 프로생활을 시작했으며 

데뷔와 동시에 잘생긴 외모와 긴 머리로 큰 인기를 얻었으며 '라이언 킹'이라는 별명도 이때 얻은 별명이다.

커리어 대부분을 포항, 성남, 전북으로 이어지는 K리그에서 지냈으며 베르더 브레멘 1 시즌, 미들즈브러 1 시즌을 포함해 유럽에서의 경력도 가졌다. K-리그 통산 득점 역대 1위(228 득점)에 올라있으며 국가대표 경력에서도 센츄리 클럽에 가입하는 등 성공적인 축구인생 이후 2020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무려 23년이나 그라운드 위에서 프로 경력을 보낸 이동국은 은퇴 기자회견에서 은퇴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남겼으며 아직까지는 은퇴 후 진로에 대해 밝힌 것이 없다.

 

 

  • 이운재

2002년 월드컵 신화의 주인공중 주연급 활약을 펼쳤던 영원한 수호신 이운재는 1973년 출생 경희대학교 졸업 후 수원 삼성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으며 상주 상무에서의 군 복무, 그리고 은퇴 시즌인 2011-2012 시즌 전남 드래곤즈를 제외하곤 수원 삼성 원 클럽 맨으로 K리그 통산 330경기에 출전했다. 1994년부터 2010년까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골대를 지킨 이운제는 은퇴 후 올림픽 대표팀 골키퍼 코치, 수원 삼성 골키퍼 코치직을 거쳐 중국 올림픽 대표, 내몽골 후 허호 터 코치 경력을 쌓고 이번 시즌부터는 전북 현대의 골키퍼 코치에 몸담게 된다. 이운재 선수에 대한 필자의 추억이 있는데 2002년 월드컵 직후 청주의 한 고깃집에서 식사를 하던 도중 이운재 선수를 보게 되었다. 친절하게 사인도 해주시고 학생이었던 필자에게 조언도 여러 가지 해주셨으며 이미지와는 다르게 굉장히 친숙한 동네 형님 같은 느낌이었다. 후에 알고 보니 들렀던 고깃집이 이운재 선수 누님의 식당이었다.

 

 

  • 홍명보

어느덧 선수보다는 지도자로의 이미지가 굳혀져 가는 홍명보 선수는 자타가 인정하는 진정한 '아시아의 마지막 리베로'다. 프로 경력의 시작이 1991년 상무라는 특이한 점이 있으며 2003-2004 시즌 LA갤럭시에서 화려한 프로 경력을 마무리한다. 은퇴 이후 바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으며 2012년 런던 올림픽 아시아 축구팀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에게 동메달을 선사한 인물이 홍명보 감독이다. 하지만 은퇴 당시 기자회견에서 행정가의 길을 걷기 위해 공부를 하겠다고 했으며 2017년 마침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로 발탁되어 행정가로서의 경력도 시작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보여주었던 중거리슛 두 방이 아직까지 필자에게는 대한민국 월드컵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남아있다.

 

 

  • 황선홍

요즘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한민국 선수들은 한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제각각 다른 리그에서 다른 모습으로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으나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이전처럼 선수들에게 붙는 멋진 수식어나 닉네임이 없다는 부분이다. 황소 황희찬 정도밖에 생각나질 않으니 이전처럼 '날쌘돌이' 서정원 이나 '유비' 유상철 같은 진지하고 한국적인 별명이 그립다는 것은 단지 농담만이 아니다. 그중 한 명이 '황새' 황선홍으로 어떻게 보면 현재 유럽을 호령하고 있는 손흥민 선수의 조상과도 같은 경력을 소유자다. 1992년 K리그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독일의 레버쿠젠(아마추어팀)에 입단하여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당시 대한민국 선수가 해외에서 뛰는데 너무나 많았던 조항과 법률 등등의 문제로 1993년 포항으로 입단하여 데뷔 시즌 우승, 1995 시즌 8경기 연속골의 신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등장해 세레소 오사카, 가시와 레이솔 등 일본 클럽에서의 경력도 쌓아왔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은퇴했으며 포항, FC서울 에서의 감독 생활도 나름 성공적이 었다는 평이 많으며 지금은 대전 하나 시티즌의 감독 자리에 있다.

 

 

  • 유상철

2002년 월드컵 1차전 후반 6분, 리버풀의 골키퍼 두덱을 좌절하게 만든 득점은 유상철의 발 끝에서 나왔다. 당시에는 드물었던 멀티 플레이어로 좌우 풀백, 센터백, 미드필더는 물론 가끔 처진 공격수(쉐도우 스트라이커)의 포지션도 소화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994년 울산 현대에 데뷔해 2006년 역시 울산 현대에서 은퇴했으며 요코하마, 가시와 레이솔을 제외하면 K리그 울산 현대에서의 경력이 전부인 원 클럽맨이다.홍명보와 마찬가지로 바르셀로나, 나폴리등 해외 명문 구단에서의 직접적인 영입 제의가 있었으나 당시 한국 축구선수를 지키려는 협회의 지침으로 인해 유럽으로의 이적은 무산 되고 은퇴 이후 차근차근 지도자 경력을 쌓았으며 인천 유나이티드에서의 놀라운 생존 능력을 보여주었으나 안타깝게 췌장암 판정을 받고 아직까지 투병 중이나 최근 반가운 뉴스에 유상철 감독의 췌장암에 차도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개인 적으로도 너무나 기뻐했다. 2002년 월드컵 경기 도중 코 골절상에도 계속 뛰었던 그 투혼으로 다시금 한번 일어나 그라운드 사령관 '유비'의 모습으로 팬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주었으면 한다.

 

 

죄송합니다 김주성 선수! ^^

  • 김주성

80년대 후반 K리그에 혜성같이 등장한 '아시아의 삼손' 또는 '야생마'로 불리는 김주성은 긴 머리를 휘날리며 그라운드를 휘젓고 상대와의 몸싸움에 거침없이 도전하는 김주성은 데뷔 초반 긴 머리와 거친 스타일로 호불호가 갈리는 선수였으나 실력 하나만은 탈아시아 급이었으며 독일의 보훔에서도 2 시즌 활약하며 1991년 FIFA 세계 올스타 경기, 은퇴 이후 2007년 넬슨 만델라 기념 경기 등에 출전하는 등 국내보다는 외국에서 이미 입지를 갖춘 선수이다. 

2005년 대한축구협회 국제부장을 시작으로 현재 동아시아 축구연맹 사무총장의 자리까지 축구 행정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여담으로 '세이부 컵 축구'라는 이름의 비디오 게임에서 대한민국 대표 모델로 등장하기도 한다.

 

 

  • 최강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전북 현대 감독 등 대한민국 최고의 지도자 반열에 오른 최강희 감독은 사실 K리그 역대 베스트 11에 오를 만큼 선수로써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다. 1979년 한일은행 실업팀 에서의 경력을 시작으로 포항제철을 거쳐 울산 현대의 레전드 선수로 남아있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4백 축구가 보편화된 이후 대한민국의 1세대 풀백으로써 지치지 않는 체력과 대인마크 능력으로 당시 화려함에 기준되던 축구스타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은퇴 이후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1991년 울산에 부임한 차범근 감독과 선수들과의 갈등에 지쳐 은퇴하였으며 이영표 이전에 대한민국 등번호 3번은 최강희 감독의 차지였다. 

 

 

  • 김병지

1990년 상무 입단 이후 무려 25년간 K리그에서 등번호 1번을 달고 주전 골키퍼로 활약한 김병지 선수는 현재 유튜버 '꽁병지TV'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울산, 포항, 경남, 전남 4개 팀에서 100경기 이상 출전 기록이라는 진기록을 수립했으며 은퇴까지 무려 706경기에 출전해 은퇴 직전까지도 변하지 않는 기량을 보여주었다. 골 넣는 골키퍼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프로 통산 2 득점뿐(?)이며 그중 한골은 울산 현대 시절 플레이 오프 경기에서 기록한 결승 헤딩골이 있다. 1995년부터 2007년까지 12년 연속 K리그 올스타전 출전 기록으로 이 기록이 앞으로 깨질 일은 없어 보이며 2015년 시즌 전남 드래곤즈와의 계약 만료 이후에도 새 소속팀을 찾았으나 이듬해에 자신의 SNS를 통해 은퇴를 알리게 된다. K리그 에서의 프로 경력과는 다르게 국가대표 경력에는 크게 빛을 보지 못했으며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는 히딩크 감독의 눈 밖에 나 이운재에게 월드컵 주전 골키퍼 장갑을 건네주기도 한다. 국가대표팀 마지막 경력은 2008년 칠레와의 A매치 대결이 마지막.

 

 

K리그 현역 선수를 제외한 레전드 선수들을 구성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K리그 레전드 선수에는 어떤 선수들이 있는지 댓글로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다음 포스팅은 K리그 레전드 외국인 선수 편을 준비해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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